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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ranc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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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만들어지고, 잘게 쪼개어지고, 쌓이고, 하나가 되기도 하고, 그것들 끼리 축적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나의 순간의 조각들이 모여 과거를 만들고,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미래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노동의 의미보다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는 시간이 기록된 기록물로서 나의 시간을 담고 있기는 동시에, 흙이 간직하고 있던 인고의 시간을 담고 있다.

 인간에게는 크로노스 안트로포스(Chronos Anthropos, 시간의 신으로서 인간) 로 살아가는 것과 카이로스 안트로포스(Kairos Anhropos, 기회의 신으로서 인간)로 살아가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숫자로 기록이 가능하고 표현가능한 시간이다. 존 스미스에 따르면 크로노스의 세계에서 중요한 질문들은 ‘얼마나 빨리?’,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등과 같이 책정가능한 이야기들이다. 반대로, 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의 양보다는 질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카이로스의 시간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시간보다도 순간과 순간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과 관계된 시간이다. 결국, 카이로스적 시간에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이 세계에서는 ‘정확히 언제?’와 같은 타이밍과 관련된 질문이 중요하다. 바쁜 현대에서 카이로스적 시간들은 점점 그 중요성을 잃어가고 많은 사람들은 크로노스 안트로포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흙이라는 물질은 단순히 신이 창조해낸 재료가 아니다. 지구가 생기고 오랜 시간 동안 침식, 풍화되기도 하고, 여러 유기물들과 섞이기도 하면서 비로소 생성된다. 우리가 보는 그리고 사용하는 흙은 단순히 몇 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수 천년의 시간을 견디면서 탄생했다. 그렇기에 ‘흙’ 이라는 것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 우리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오랜 시간이 담긴 결정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흙은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담은 하나의 매개체로서 나의 카이로스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작용한다.

 나에게 시간이란, 글로 기록해야 하고 그저 흘러가는 것 보다는 내가 매 순간을 기억해야 하고 추억하고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연결조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은 연결조각이 하나로 뭉치기도 하며, 어떤 사건으로 인해 흩어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나’ 라는 존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억을 추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카이로스를 기억하면서 나는 순간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있다.  
 는 태토에 나의 감정, 시간을 담고 작은 조각들로 나뉘는 행위를 반복하고, 조각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반복하여 만들어진다. 행위를 반복하면서 나는 과거의 순간을 회상하기도 하고 만드는 순간의 감정을 곱씹기도 하며 나의 카이로스를 크로노스화 하는 과정의 경험을 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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